이선옥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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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조에 쓰는 반성문


2010년 한 잡지에서 MBC 노조 파업 이야기를 싣자고 제안했다. 노조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김서중 선생 소개로 이근행 당시 위원장이랑 노조의 베테랑 송간사님을 만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집에서 여의도가 가까워 1층 민주광장 집회, 출근투쟁, 대시민 선전전 등 노조의 투쟁을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던 게 TV에서나 보던 유명인들이 가까이에서 돌아다니고, 어지간한 노조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젊은 노래패가 집회 때마다 나와 흥을 돋웠다. 콘텐츠를 주무르는 방송쟁이들이 모인 곳이라 재기발랄한 파업 프로그램이 넘쳤다. 파업뉴스데스크나 MBC프리덤 립덥 같은 영상은 지금도 강의할 때 유용하게 쓴다.(MBC프리덤: https://www.youtube.com/watch?v=CZtz7FyYGXU) 

시민들의 반응도 좋아서 투쟁기금이 억 단위로 답지하고, 유명한 가수들이 노조의 파업을 응원하는 콘서트를 했다. 방송사의 파업은 정말 방송의 연장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파업은 파업인지라 집행부는 파업 프로그램을 짜느라 엄청 고생들을 했다. 날마다 로비에서 열리는 집회에 와서 연대와 지지 발언을 해 줄 연사를 섭외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는데, 그 때 조직국장(혹은 쟁의국장?)이었던 이00 국장님이 도움을 청해 연사들 섭외를 도와드렸다. 하종강샘, 김진숙 지도위원, 김재광 노무사, 이소선 어머니 같은 분들이 고맙게도 흔쾌히 달려와 주셨다. 
한 날은 이00 피디께서 급하게 대학 강의시간을 섭외할 수 없겠느냐고 요청을 하셨다. 피디, 기자, 아나운서를 고루 섞어서 조합원들이 한 팀씩 대학생들을 만나자는 취지였다. 성공회대 김서중 선생님이랑 인천대 강의를 하던 하종강 샘한테 급하게 연락을 했는데, 다행히 두 분 다 바로 강의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학생들은 당연히 좋아했고 조합원들도 재미있게 이야기 하면서 즐겁게 마무리를 했다.

나는 그 때 노조에서 섭외를 도와 주셔서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아마존의 눈물 팀 중 한 분을 인터뷰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글을 쓴 후에도 파업 집회에는 계속 찾아갔다. 두 달 쯤 파업을 벌이던 중 집행부는 파업 중단과 복귀안을 제시했고 조합원들은 이틀 동안 치열한 토론을 벌인 끝에 복귀를 결정했다. 
복귀를 결정한 후 회사 마당에서 투쟁을 갈무리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파업프로그램을 도와준 공(?)으로 집행부에서 뒤풀이 자리에 데려갔다. 여의도의 어떤 호프였는데 그 날 주량보다 많이 마시고 취해서 집에 돌아왔더니 아끼던 귀걸이가 한 쪽만 달랑거리고 있었다. 내가 가진 유일한 금붙이였는데... 지금도 MBC 노조 하면 잃어버린 내 한 쪽 귀걸이가 생각나 속이 쓰리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내가 MBC 노조에 마음의 빚이 있어서다. 처음 며칠 파업현장을 지켜보는데 노조의 간부 한 분이 연설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우리들 임금 몇 푼 더 올리자고 밥그릇 싸움하는 거 아닙니다.” 나는 그 말이 걸렸다. 
내가 다니던 현장 중에는 딱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에서 몇 백 원 더 받는 사업장들이 있었다. 그들한테는 임금 몇 푼을 올리는 게 중요한 싸움이었다. 그런데 노조의 파업에 따라붙는 ‘밥그릇 싸움’ ‘이기적인 임금인상 투쟁’ 같은 공세에 늘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 말이 불편했다. 

조심스럽게 노조 사무실에서 이근행 위원장께 그 말씀을 드렸다. 다음 집회에서 이위원장은 “우리는 비록 임금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지만 노동자들한테는 임금 몇 푼 올리기 위한 싸움도 중요하다”는 말을 해 주셨다. 고마웠다.

그 때 내가 가진 불편함은 그런 것들이었다. 늘 박복한 현장을 가다 보니 수 억 원이 모금되고, 유명한 사람들이 공연을 해 주고, 시민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이들의 투쟁이 부러웠다. 임금 몇 푼 올리기 위해 파업하는 노조들은 MBC 노조의 집회에 열심히 참여해 몸을 보탰다. 연대와 지원이 상호성이 아니라 일방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노동자들의 투쟁도 빈익빈 부익부인가 싶어서 삐딱한 마음으로 투쟁 현장을 지켜봤다. 월 80만 원을 받는 청소 노동자나, 연봉 1억 원을 받는 비행기 조종사나 똑같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을 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있다고 썼으면서. 어떤 이유로 싸우든 이들도 자기 싸움을 하고 있는데...


파업의 대가는 어떤 노조를 막론하고 참혹하다. 이들 역시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고, 징계를 받고, 재판에 불려 다녔다. 방송쟁이들이 방송을 못한 채 한직으로 떠돌았다. 나쁜 정권 10년 동안 MBC, KBS, YTN은 망가졌다. 노동자들의 겪는 고통은 어떤 노조건 비슷했다. 몇 년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때 내 마음이 종종 부끄러웠다.


촛불이 타오르고, 정권이 바뀌고 언론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대통령이 집권했다. 언론노동자들도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짤려도 먹고살 만 하니까 집행부를 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던, 그래서 파업 후 다시는 방송을 할 수 없었던 날라리 PD는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페이스북 동영상을 올려 징계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어 조합원들이 속속 같은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치 MBC 프리덤 립덥처럼 꼬리에 꼬리를 잇고 조합원들이 다음 조합원에게 손을 내밀고 이어받는다. 
KBS 조합원들도 사장퇴진 운동을 시작했다. 김비서, 엠빙신으로 불린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들의 구호처럼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싸우고 있으니까. 
해직기자인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노조에서 임금을 상당액 보전해주는 우리는 다른 해고노동자들에 비해 엄청 운이 좋은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해직자로 살지만 늘 언론민주화에 기여하는 투쟁을 해야 하고, 하고 있다고 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싸울 수밖에 없다. 그 대가 또한 모두가 같이 치르고 있다. 투쟁에 서열을 매기고, 고통을 계량하고, 언론노동자들의 파업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던 삐뚤어진 마음이 그래서 부끄럽다. 그래서 쓰는 반성문이다.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날을 위해, 끝까지 싸우고 있는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에 나도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보태며 쓴다.


김장겸은 퇴진해라! 고대영도 퇴진해라! 노종면은 사장돼라!


이선옥의 방 - 짧은생각

잡다한 끄적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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